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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선과 한국기독교박물관

김양선이미지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설립자인 매산(梅山) 김양선(金良善)은 1907년 2월 평안북도 의주에서 김관근 목사와 백관성 권사의 3남으로 태어났다. 매산은 아버지가 세운 중원중학교를 거쳐 선천의 신성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그리고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숭실 재학중 그는 비밀결사인 '청구회(靑丘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평양의 학생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다 투옥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한 매산은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운동을 추진하였다. 그가 교회사나 고고학에 열정을 쏟기 시작한 것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부터였다. 이 때부터 많은 양의 사료와 유물을 수집·정리하였다. 그는 외할아버지 백홍준이 1870년대 말 만주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한글성경번역 작업에 참여했다는 점과 그의 집안이 한국초기 교회의 설립에 직접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사 정립에 뜻을 두게 되었다. 또 숭실전문학교 시절 양주동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찾아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1948년 4월 매산은 서울 남산의 옛 '조선선궁' 자리에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설립하였다. 이 때 남북한을 오고가며 북한에 남겨둔 자료와 유물을 남한으로 반출하다가 그는 부인과 딸을 잃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매산의 목숨을 건 열정, 부인과 딸의 생명을 대가로 설립될 수 있었다. 6·25전쟁중에는 박물관의 유물이 해외로 옮겨졌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전쟁 이후 한국기독교박물관이 남산에 재건립되었으나, 1967년 4월 매산은 박물관 유물 일체를 자신의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하였다. 오늘의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이렇게 하여 탄생하였다.

목회자와 교육가로서 많은 교회와 학교 설립에 관여했던 매산은 1954년 숭실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래 1970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사, 한국교회사, 고고학 등의 연구와 교육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기독교와 한국의 민족문화에 대한 매산의 열정으로 설립된 한국기독교박물관은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밝혀주는 수준높은 고고학 자료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각종 기독교 자료, 실학을 비롯하여 개화기의 근대화 문물, 민족운동사 자료를 소장·전시하여 사회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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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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